바이킹이야기Viking Stories
👁

CHRONICLE

연대기

793년 린디스판부터 1066년까지입니다. 각 카드는 왜, 누구, 결과만 먼저 보여 줍니다. 라그나르의 집안은 사가의 묶음이라 연대기의 해와 한 줄로 잇지 않습니다. 1066년은 교과서에서 시대를 닫는 해이지, 노르드어와 정착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날은 아닙니다.

  1. 01 · Lindisfarne

    린디스판, 793년

    793년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793년 노섬브리아의 린디스판 수도원이 이교도 뱃사람에게 약탈당했다고 적습니다. 바이킹 시대를 여는 이정표로 자주 쓰이는 해입니다. 북해의 첫 배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
    수도원은 해안에 있고, 방어보다 성물과 식량이 모여 있었습니다. 배가 얕아 바로 닿았습니다.
    누구
    연대기는 이교의 북쪽 사람, 데인이라고 부릅니다. 선장의 이름은 남지 않았습니다.
    결과
    충격이 편지에 남을 만큼 컸습니다. 그 뒤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프랑크 해안의 습격이 연대기의 단골이 됩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2. 02 · The Franks and Paris

    프랑크 해안과 845년 파리

    834–845년 전후

    9세기 중반 프랑크 강의 하구와 도시가 반복해서 약탈당합니다. 845년 센 강을 오른 함대가 파리를 치고, 대머리 샤를이 은을 주고 물러나게 했다는 기록이 생베르탱 연대기에 있습니다.

    왜
    카롤링 왕국이 분할되며 강 하구의 방어가 고르기 어려웠습니다. 얕은 배는 강을 오르는 무기였습니다.
    누구
    연대기는 노르드만의 함대라고 적습니다. 라그나르가 그 함대의 우두머리였다는 말은 후대 전승입니다.
    결과
    은 7,000파운드라는 숫자가 그 해의 몸값으로 전합니다. 약탈이 끝난 것은 아니고, 센 강과 루아르 강의 기지가 뒤에 노르망디의 밑그림이 됩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3. 03 · Great Army

    대이교도 대군과 라그나르의 아들들

    865–878년

    865년 큰 이교도 군이 동앵글리아에 상륙합니다. 소규모 여름 약탈이 아니라, 왕국을 갈아 치울 만큼 눌러 앉은 군대입니다. 지도자 이름이 연대기에 나오고, 그들을 라그나르의 아들로 묶는 말은 사가입니다.

    왜
    잉글랜드의 왕국들(노섬브리아, 머시아, 동앵글리아, 웨섹스)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군은 그 틈과 말, 식량을 이용했습니다.
    누구
    연대기와 아일랜드 쪽 기록에 이바르, 할프단 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우바와 비요른을 형제로 확정하는 것은 후대입니다.
    결과
    867년 노섬브리아의 왕들이 죽고, 869년 동앵글리아의 에드먼드가 죽습니다. 웨섹스만 알프레드 아래에서 왕국으로 남습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4. 04 · Alfred and Edington

    알프레드, 에딩턴, 데인로

    878년, 그 뒤

    878년 웨섹스의 알프레드가 에딩턴에서 구스룸의 군을 이깁니다. 구스룸은 세례를 받고, 뒤에 경계가 글로 남습니다. 잉글랜드가 하루아침에 하나가 된 전투는 아닙니다.

    왜
    대군이 웨섹스까지 들어왔습니다. 알프레드는 습지와 요새로 시간을 벌다가 같은 해에 전열을 다시 모았습니다.
    누구
    알프레드와 구스룸입니다. 세례명으로 구스룸이 애설스탠을 받았다고 아세르가 전합니다.
    결과
    웨섹스는 살아남고, 북쪽과 동쪽의 상당 부분이 덴마크계 법과 정착의 땅이 됩니다. 그 지역을 뒤에 데인로(Danelaw)라고 부릅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5. 05 · Dublin

    아일랜드와 더블린

    841년 전후–11세기

    아일랜드 연대기는 841년 더블린에 이교도의 겨울 기지, 롱포트를 적습니다. 약탈 캠프가 항구 도시가 되고, 노예와 은의 시장이 됩니다. 아일랜드 왕들과 섞인 노르드-게일 권력이 그 뒤를 잇습니다.

    왜
    수도원과 해안은 빠르고, 강은 내륙으로 이어졌습니다. 겨울을 나기 시작하면서 약탈이 정착으로 바뀝니다.
    누구
    올라프와 이마르 같은 이름이 9세기 아일랜드 연대기에 나옵니다. 브리안 보루는 11세기 초의 다른 세대입니다.
    결과
    더블린은 아일랜드 정치의 축이 됩니다. 1014년 클론타프에서 브리안 보루가 이기지만 그도 전사하고, 더블린의 노르드계 도시는 그 날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6. 06 · Normandy

    노르망디, 911년의 롤로

    911년, 그 뒤의 노르만

    단순왕 샤를이 센 강의 바이킹 우두머리 롤로에게 루앙 일대의 땅을 주고, 롤로는 세례와 방어를 약속했다고 전합니다. 그 합의의 관용적 해가 911년, 장소가 생클레르쉬레프트입니다. 계약서는 당대가 아니라 뒤의 두도가 이야기합니다.

    왜
    프랑크 왕은 되풀이되는 센 강 함대를 은으로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한 우두머리에게 땅을 주고 다른 함대를 막게 했습니다.
    누구
    롤로입니다. 노르웨이 사가의 굉게르흐롤프와 같은 사람이라는 동일시는 나중에 붙었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결과
    후손이 노르망디 공작이 되고, 1066년 윌리엄이 잉글랜드 왕이 됩니다. 시칠리아의 노르만 왕국은 같은 혈통의 11세기 일이며, 바이킹 시대의 약탈선과 같은 사건은 아닙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7. 07 · Rus and Kyiv

    루스와 키예프

    9–10세기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무사와 상인이 강의 길을 따라 라도가, 노브고로드, 키예프에 자리를 잡습니다. 원초 연대기(12세기)는 862년 슬라브 부족이 류릭을 불렀다고 적습니다. 그 초청의 문장은 전승이고, 스칸디나비아계 엘리트의 존재는 고고학과 이름이 뒷받침합니다.

    왜
    모피, 노예, 은이 강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무기를 가진 소수가 교역로와 공납을 잡았습니다.
    누구
    류릭, 섭정으로 전하는 올렉, 이고리, 올가, 스뱌토슬라프, 블라디미르입니다. 류릭에서 이고리로 이어지는 혈연은 연대기의 계보이고, 시간 간격이 넓습니다.
    결과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루스 공국이 서고, 988년 무렵 블라디미르가 기독교를 받습니다. 왕조 이름은 뒤에도 류리크 왕조로 불립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8. 08 · Varangian Guard

    바랑기안 근위대

    10세기 말–11세기

    바랑기안(Varangians)은 동쪽 길이의 노르드계 무사·상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잔티움 황제 바실리오스 2세가 루스에게서 큰 용병대를 받았고, 그 전통이 황제 근위대로 남습니다. 하랄드 하드라다가 그 안에서 복무했다는 말은 사가가 길고, 세부 직책은 사가의 자랑과 겹칩니다.

    왜
    황제는 내전과 불가르 전선에 충성하는 이방 부대가 필요했습니다. 루스는 급료와 비단, 지위가 필요했습니다.
    누구
    바실리오스 2세와 키예프의 블라디미르가 988년 무렵의 협약의 당사자로 이야기됩니다. 하랄드는 11세기 중반의 다른 세대입니다.
    결과
    도끼를 든 북쪽 근위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궁정 풍경이 됩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때까지 이름이 남습니다. 그 끝은 바이킹 시대의 끝보다 뒤입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9. 09 · Iceland and Greenland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870년대–10세기 말

    아이슬란드 정착은 870년대에 시작됐다고 뒤의 정착서가 적습니다. 잉골프 아르나르손이 첫 정착자로 전합니다. 붉은 에이릭은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된 뒤 985년 무렵 그린란드에 사람들을 데려갑니다. 이름과 항해는 사가이고, 정착의 흔적은 고고학이 받칩니다.

    왜
    좋은 땅과 추방, 그리고 배가 대서양 섬을 차례로 열었습니다. 약탈 도시보다 농장과 목축의 이주입니다.
    누구
    정착자와 에이릭, 그의 집안입니다. 에이릭의 아내는 사가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에이릭 자신은 끝내 옛 신앙에 남았다고 전합니다.
    결과
    아이슬란드는 930년 무렵 알팅을 세우고, 1000년 무렵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그린란드의 동부와 서부 정착은 중세 말까지 이어지다 15세기에 사라집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10. 10 · Vinland

    빈란드와 랑스 오 메도즈

    1000년 무렵

    사가에 따르면 에이릭의 아들 레이프가 서쪽의 빈란드(포도 또는 풀밭의 땅)에 닿습니다. 1960년대 뉴펀들랜드의 랑스 오 메도즈에서 노르드인의 집이 확인되어, 유럽인이 그 해안에 잠시 머문 일은 고고학의 사실이 됩니다. 사가의 포도밭과 전투가 그 집터와 같은 장면인지는 별개입니다.

    왜
    그린란드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나무와 철을 만들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탐색은 정착의 연장입니다.
    누구
    레이프 에이릭슨이 사가의 주인공입니다. 형제와 프레이디스의 원정은 두 사가가 다르게 적습니다.
    결과
    큰 식민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원주민(사가의 스크렐링)과의 충돌, 거리, 적은 사람이 이유로 이야기됩니다. 콜럼버스보다 앞선 북유럽의 도달이지, 아메리카 정복은 아닙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11. 11 · Christianization

    기독교화

    9세기 선교–11세기 초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는 하랄드 푸른이의 세례 한 번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9세기 안스가르의 선교가 먼저 있고, 10세기 말 덴마크의 푸른이, 노르웨이의 올라프들, 키예프의 블라디미르가 왕의 신앙을 바꿉니다. 마을의 습속은 더 오래 겹칩니다.

    왜
    왕에게 세례는 신앙인 동시에, 독일·영국·비잔티움 궁정과 손을 잡는 정치였습니다.
    누구
    안스가르, 하랄드 푸른이, 올라프 트리그바손, 올라프 하랄드손(성 올라프), 블라디미르입니다.
    결과
    옐링의 큰 돌은 하랄드가 덴마크인들을 기독교로 만들었다고 왕 스스로 새기게 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1030년 스티클레스타에서 올라프가 죽은 뒤 성인이 됩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12. 12 · Cnut

    크누트의 북해

    1016–1035년

    덴마크의 스벤 튀구스케그(포크비어드)가 잉글랜드 왕위를 잠시 잡았고, 아들 크누트는 1016년 잉글랜드 왕이 됩니다. 이어 덴마크, 한동안 노르웨이까지 겹칩니다. ‘북해 제국’은 그 겹침을 부르는 현대의 말입니다. 크누트 자신이 그렇게 새긴 국호는 아닙니다.

    왜
    잉글랜드의 애설레드 왕조가 흔들리고, 덴마크 왕가의 함대와 군대가 이미 여러 해 들어와 있었습니다.
    누구
    크누트, 그의 아버지 스벤, 아내 엠마(노르망디의 리샤르 1세의 딸, 애설레드의 미망인)입니다.
    결과
    1035년 크누트가 죽자 아들 하랄드 토끼발과 하르트크누트가 잉글랜드와 덴마크를 나누다 잇달아 죽습니다. 왕위는 애설레드의 아들 참회왕 에드워드에게 돌아갑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
  13. 13 · 1066

    스탐퍼드 브리지와 헤이스팅스

    1066년

    1066년 노르웨이의 하랄드 하드라다가 잉글랜드 왕위를 요구하며 북부에 상륙했다가, 9월 25일 스탐퍼드 브리지에서 해럴드 고드윈슨에게 패하고 죽습니다. 해럴드는 남으로 달려가 10월 14일 헤이스팅스에서 노르망디의 윌리엄에게 패하고 죽습니다. 바이킹 시대의 끝으로 자주 적는 해입니다.

    왜
    참회왕 에드워드가 후계를 또렷이 남기지 못했고, 세 사람이 각자의 약속과 혈연을 말했습니다.
    누구
    하랄드 하드라다, 그의 편에 선 토스티그, 해럴드 고드윈슨, 윌리엄입니다. 윌리엄은 롤로의 후손인 노르망디 공작입니다.
    결과
    잉글랜드 왕위는 노르만 왕조로 넘어갑니다. 스칸디나비아의 왕국은 계속됩니다. 1066년은 약탈선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꺼진 날이 아니라, 잉글랜드를 두고 벌인 북쪽 왕의 마지막 큰 원정이 실패한 해입니다.
    세 가지 포인트와 조금만 더 →